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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도서관(정미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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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372회 작성일 12-02-2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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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나의 아름다운 도서관 본문

<푸른광장>나의 아름다운 도서관

문화일보 | 기자 | 입력 2012.01.26 14:01 | 수정 2012.01.26 14:11

삼십년 동안 살아온 서울을 떠나 근교의 소도시로 이사온 지 1년이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성격이 못 되는지라 한동안은 전에 살던 동네까지 가서 장을 봐오곤 했으나 요즘은 작은 도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소방서와 시청, 경찰서와 시민회관이 올망졸망 모여 있고 공원과 골목시장이 등을 대고 있는 풍경은 거대도시의 소립자로 살아온 나에겐 소인국에 온 것처럼 신선하고 살가운 것이었다. 신발끈을 조이고 걸어다니며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숲이나 야생화공원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런 즐거움 중 가장 큰 것은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과의 만남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도서관이지만 이곳에서는 늘 하루가 짧다. 밀린 원고를 쓸 때도 있고 참고 서적을 찾아 서가를 뒤질 때도 있다. 극장 상영을 놓친 예술영화를 디브이디로 볼 때도 있다. 소박한 카페도 있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잡지를 읽을 수 있는 코너도 있다.

아침이면 배낭에 노트북과 귤 몇 알을 담아 집을 나선다. 골목과 작은 공원을 지나 도서관에 들어서면 현판에 적혀 있는 공자님 말씀을 먼저 올려다본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학창 시절 한문 시간에 그 문장을 외울 땐 공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말씀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세월이 나를 가르쳤는지 요즘은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어다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공자님 말씀 다음은 수족관이다. 벽 한면을 따라 길게 놓인 수족관 안에서 색색깔의 물고기들이 수초 사이를 유영하는 모습도 참 아름답지만, 나는 그날의 운세를 거기서 읽는다. 오늘 글이 잘 써질 것인가? 섬세한 수초 사이에 숨어사는 투명한 새우를 마주친 날은 글이 잘 써지는 날이다. 그런 날이면 열람실로 올라오는 걸음이 한결 가볍다.

작가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다'고 말했다. 모르긴 해도 보르헤스는 도서관에서 소설을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노트북에 코를 박고 마감이 지난 원고를 쓰고 있을 땐 그 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실내를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 역시 자기만의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무기는 참 제각각이다. 수능완전정복, 공인중개사 기출문제집, 토익, 텝스, 소방관리사자격…. 희끗한 머리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는 중년 여성도 있고 책상에 엎드려 5분간의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학생도 있다.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 초등생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도서관이 천국은 아닐지 몰라도 꿈을 향해 나아가게 도와주는 사다리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머리를 식히려 어슬렁거리던 서가에서 제 인생의 빛이 될 단 한 권의 책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며, 읽고 싶었으나 선뜻 살 수 없었던 책을 발견하곤 환히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세상이 우리가 이미 관심을 가진 것을 검색하는 정보의 창고라면, 도서관은 미처 몰랐던 책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해주는 성찰의 바다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지 한번 드나들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이 즐거운 놀이터인 도서관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도서관에 갈 시간이 통 없다고? 대부분의 도서관들은 휴관일을 주중으로 잡고 있다.

 

이런 작은도서관 도시 곳곳에 세워지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자투리땅에 세워진 2층짜리면 어떤가. 수족관이 없으면 어떤가. 제목에 이끌려 무심코 빼어든 책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아내는 소년이 있다면, 삶에 지친 할아버지가 무협만화 시리즈에 빠져서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연인들이 카페 대신 열람실에 나란히 앉아 마주보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면, 가끔 감명깊은 구절을 같이 읽고 뽀뽀라도 한다면, 그 도서관은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사실은 마감 지난 원고에 쫓길 때마저 도서관은 내게 천국과도 같다. 매번 수족관 유리에 코를 박고 기어이 새우를 찾아내고서야 열람실로 올라간다는 사실도 고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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